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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귀를 통과하는 부자
cleven 668 2017-07-29 15:53:57
 
 

예수님은 새 나라의 킹 메시아로 오셨다. 예수님의 과업은 새 나라의 기쁜 소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성경 누가복음 4장 16-19절). 그 기쁜 소식에 따르면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새 나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새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불행이 닥칠 것이다(성경 누가복음 6장 20-26절). 왜 그토록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후대하시고 부요한 사람들을 냉대하시는 것일까.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부요한 사람들이 방치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부자들은 자신들의 능력 덕분에 재물을 얻었다고 우쭐댄다. 아니다. 부요한 집안에서 태어났거나 좋은 환경을 만났거나 우연한 기회를 포착한 덕분에 재물을 얻는다. 개인의 능력은 독립 변수가 아니다. 종속 변수일 뿐이다. 수십 억 년의 지구가 이미 있었고 수십 억 명의 세계 시장이 먼저 있었다. 수많은 세월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적인 노동력을 미리 축적해 놓았다. 그런 토대가 있었기에 지금의 개인적인 축재가 가능했다. 그러니까 모든 사유 재산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것이다. 사회적인 나눔이 없는, 개인적인 축재는 도둑질이요, 강도질이다.

늙어서까지 수백 억 원, 수천 억 원, 수조 원의 재물을 쌓아놓고 자식에게만 물려주는 부자는 도둑이요, 강도다. 그런 인색한 부자는 예수님의 새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게 더 쉬울 지경이다(성경 누가복음 18장 25절). 물론 바늘귀를 통과하는 부자도 있다. 예수님을 추종하면서 자신의 재물을 흘러 보낼 줄 아는 부자다. 하지만 그런 너그러운 부자는 드물다. 자기밖에 모르는 부자에 대해 예수님은 가혹하시다. 어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부자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신다.

'한 부자가 있었다. 그는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기며 호화스럽게 살았다. 한편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부스럼투성이의 거지가 누워 있었다. 그가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 하자 심지어 개들까지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다. 어느 날 거지가 죽어 천사들의 인도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도 죽어 땅에 묻혔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중에 쳐다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나사로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16장 19-23절).

부자는 날마다 사치스럽게 즐기며 살았다. 그 집의 대문 앞에는 거지 나사로가 주린 배를 움키고 누워 있었다. 음식 쓰레기통이라도 뒤질라치면 개들이 와서 부스럼투성이의 나사로를 햝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사로는 죽어 천당으로 올라갔고 부자도 죽어 지옥으로 내려갔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스럽게 쳐다보니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평안히 안겨 있었다. 생전에 나사로가 어떻게 하나님을 잘 믿었는지, 얼마나 착한 일을 많이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부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불신했는지, 얼마나 나쁜 일을 많이 했는지도 알 수 없다. 거지라서 천당으로 올라갔고 부자라서 지옥으로 내려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 구성이 단순하다.

'그래서 그는 큰 소리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다가 내 혀를 시원하게 해 주십시오.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생각해 보아라. 너는 살아 있을 때 좋은 것을 마음껏 누렸고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만 겪었다. 하지만 지금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거기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뿐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 싶은 사람도 건너갈 수 없고 거기서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도록 되어 있다''(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16장 24-26절).

부자는 지옥의 불꽃 속에서 너무 괴롭다. 큰 소리로 아브라함을 불러 도움을 구한다. 나사로를 보내 물 한 방울만 자기 혀에 적셔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 한 방울마저 거절됐다. 나사로는 살아서 온갖 괴로움을 겪었으니 지금 천당에서 위로를 받는 중이고 부자는 살아서 온갖 호사를 누렸으니 지금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중이란다. 게다가 양측 사이에는 큰 구덩이가 가로놓여 있어 왕래가 불가능하다. 현세에서 고통스럽게 살수록 내세에서 위로를 받고 현세에서 호화스럽게 살수록 내세에서 고통을 당한다는 말인가. 소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교리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가난한 이웃의 고난을 외면한 죄가 그렇게 크다는 것인가.

'그러자 부자는 '제발 부탁입니다. 그렇다면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 주십시오. 내 형제가 다섯인데 나사로를 보내 그들에게 경고하여 내 형제들만이라도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가면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으나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비록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이 믿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16장 27-31절).

부자의 애원은 이어졌다. 나사로를 자신의 형제들에게 보내 그들이 지옥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거절됐다. 그들에게 이미 있는 성경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가면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며 부자는 또 졸랐다. 그러나 거절은 단호했다. 이미 있는 성경의 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며 잘랐다. 너무 무자비하지 않는가. 부자가 그토록 큰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부자는 간접 살인의 죄를 지었다. 재물이 흐르는 만큼 생명이 살고 재물이 고이는 만큼 생명이 죽는다.

축재가 죄인 것은 아니다. 정당한 축재가 가능하다. 하지만 재물이 흘러가지 않고 고여만 있다면 죄다. 재물은 땅에 쌓아 두는 게 아니다. 하늘에 쌓아야 한다. 예수님의 새 나라의 윤리에 맞게 재물을 필요한 곳으로 흘러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너희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먹고 녹슬어 못 쓰게 되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기도 한다. 너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그곳은 좀먹거나 녹스는 일이 없으며 도둑이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현대인의성경, 마태복음 6장 19-21절).

재물은 일시적인 안전 보장이다. 영원한 안전 보장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한다. 많이 가졌으니 많이 나누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나누기를 즐기는 부자여야 한다. '그대는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교만하거나 곧 없어질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희망을 두라고 가르치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넘치게 주셔서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고 선한 일에 부요하며 나눠 주기를 좋아하고 남의 어려움을 깊이 동정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시오. 이것이 그들의 장래를 위해 좋은 터를 쌓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현대인의성경, 데모데전서 6장 17-19절).

부자가 되려고 지나치게 애쓰다가 파멸로 치닫곤 한다. 재물 중심으로 살면 남의 인생도 망친다. 재물을 좇다가 신앙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시험과 함정에 빠지고 사람을 파멸시키는,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망에 떨어집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온갖 악의 뿌리가 됩니다. 이것을 가지려고 열망하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고통을 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현대인의성경, 디모데전서 6장 7-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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