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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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당 중심과 현장 중심
cleven 749 2017-06-10 23:02:17
 
 

로마 대제국의 식민지 변두리에서 예수님은 새 신성국가를 세우고자 하셨다. 많은 서민들이 예수님께로 몰렸다. 기존의 정치 세력과 종교 세력에게 예수님은 한낱 불순분자였다. 당시의 기득권자들은 곳곳에 그물을 쳐 기필코 예수님을 잡아야 했다. 그날도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에게 시험하는 질문의 그물을 던졌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종교의 최우선 질문이긴 하다. 예수님은 그가 스스로 대답하도록 반문하셨고 그는 율법학자답게 명답을 내놓았다. 그렇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영생의 길이다.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와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이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으며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하고 다시 묻자 그는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에게 '네 말이 옳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으나'(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10장 25-28절).

예수님은 그더러 아는 대로 행하라며 끝내셨지만 그는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냐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의 입에서 그 유명한 스토리텔링이 흘러나왔다. 어떤 사람을 강도들이 죽도록 때리고는 버려두었다. 한 제사장이 그를 보고는 피해 갔고 한 레위인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일을 너무 소중히 여겨 거기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주위의 위급한 사람을 챙길 여유가 없다. 자신의 바쁜 스케줄을 멈출 줄 아는 사람만이 남의 곤경을 돌아볼 수 있다. 매일 규칙적으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위급한 사람을 돕는 일쯤은 하찮은 것일까. 거룩한 성전 직무에 종사하는 만큼 속된 세상사에는 무관심해야 할까.

'그 율법학자는 자기가 옳다는 것을 보이려고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 하고 예수님께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의 옷을 벗기고 때려서 반쯤 죽은 것을 버려두고 가 버렸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는 피해서 다른 길로 지나갔다. 그리고 어떤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는 피해서 다른 길로 지나갔다'(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10장 29-32절).

유대인들이 개돼지라며 상종도 않던 사마리아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았다. 자신의 바쁜 스케줄을 멈추고 피해자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 돈도 아낌없이 썼다. 여기서 스토리텔링은 끝났고 질문이 이어졌다.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당연히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예수님이 당대와 후대에 던지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왜 은근히 제사장과 레위인을 따돌리시고 사마리아 사람을 앞세우신 것일까. 성전을 돌보는 성직자들의 성전 직무보다 위급한 사람을 돌보는 보통 사람들의 현장 직무가 더 거룩하다는 것일까.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 중에 그 길로 지나다가 그를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다가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후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까지 데리고 가서 간호해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이 사람을 잘 보살펴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 하고 부탁하였다. 그러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때 율법학자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긴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은 그에게 '너도 가서 그와 같이 실천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10장 33-37절).

이전에 없던 새 나라가 예수님과 함께 시작됐다. 그 나라에서는 장소 성전을 중앙에 모시지 않는다. 장소 성전은 오히려 혁파의 대상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성전 직무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이 직접 성전이시고 제사장이시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추종자들도 성전이 되고 제사장이 된다. 그 나라에서는 장소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일이 아니라 각자의 현장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섬기는 일이 핵심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써 성전이 되고 제사장이 된 성도라면 교회당 중심이 아니라 현장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www.everce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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