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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영상] 최성봉 껌팔이 신앙
cleven 2244 2012-01-15 00:26:47
 
 

[영상-최성봉 껌팔이 신앙]

‘껌팔이 폴포츠’ 최성봉-성악가 박정소 두 남자, 희망 노래는 계속된다

한 남자가 무대 위에 섰다. 앳된 얼굴의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5세 때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껌과 에너지드링크 등을 팔며 10년 동안 거리에서 살았다고.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막노동을 한다는 22세의 청년은 성악가처럼 ‘넬라 판타지아’를 멋지게 불렀다.

지난 8월 tvN ‘코리아 갓 탤런트’ 시즌1에서 준우승한 최성봉(22)씨의 이야기는 국내는 물론 해외 주요 언론들에 소개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페이스북 팬페이지는 4만4500여명의 세계 네티즌이 구독하고 있다.

방송 출연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루살이’처럼 여겨졌던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됐다. 또 죽고 싶었던 수많은 이유들은 사라지고 살아야 할 이유만 남았다. 누군가 그의 노래를 듣고 희망을 가지기 때문에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악보도 볼 줄 몰랐던 그에게 노래를 가르쳐준 성악가 박정소(36·루체 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만난 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루살이’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길 가다 쓰러진 거예요.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온 후 4일 동안 한 끼도 못 먹고 대전 동부터미널 근처를 돌아다녔어요. 불을 환하게 밝힌 롯데리아가 보였고 그 앞에 쓰러졌어요. 다시 일어났을 때 어떤 형이 자장면을 사주며 껌 파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이때부터 거리생활이 시작됐다. 유흥가 뒷골목을 돌며 껌을 팔았다. 아는 사람은 ‘조폭’ ‘삐끼’ 그리고 인근 상인이 전부였다. 잠은 나이트클럽 계단이나 공중화장실에서 잤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집이었다.

껌을 팔아서 돈을 벌었지만 쓸 줄 몰랐다. 밥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다. 공중화장실에서 혼자 컵라면을 먹었다. ‘나는 왜 이렇게 혼자 있어야 하지.’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다를 것이 없는 ‘하루살이’ 같았다. 죽어도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해 줄 사람이 없었다.

“새벽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눈을 뜨니 머리에 피를 흘리고 누워 있었는데 행인들은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어요. 겨우 일어나 걷다가 쓰러져도 아무도 응급차를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대전 동부터미널까지 겨우 걸어와 의자에 쓰러졌어요. 누군가 응급차를 불러줘 병원에 실려 갔지만 고아원에서 도망친 아이였기 때문에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왔어요. 다시 고아원으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벗이 되어 준 음악

누군가에게 “오늘은 참 힘든 하루였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던 노래가 친구가 돼주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지 않아 음정과 박자는 뭔지도 몰랐지만 그냥 듣고 따라 불렀다.

“열두 살 땐가 대전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껌을 팔려고 들어갔는데 어떤 성악가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어요. 순간 감전되는 것 같았어요. 난생 처음 설렘을 느꼈지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어떤 것을 음악이 건드려준 것 같아요. 그때부터 그 아저씨처럼 성악을 하고 싶었어요.”

2003년 14세 때 노래를 가르쳐 줄 선생님을 무작정 찾아 나섰다. 이때 만나 조건 없이 성악을 가르쳐준 사람이 박씨다. “당시 대학생으로 성악 레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성봉이 불쑥 나타나 ‘노래를 배우고 싶어요. 저는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어요. 그냥 가르쳐주면 안 되나요?’라고 했어요. 혼자 사는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한 옷차림이었고 표정도 밝았어요. 저는 뭔가에 이끌리듯 일단 아이에게 성악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박 대표는 몇 달 후 성봉이 사는 곳을 찾았다. 대전 동부터미널 부근의 공터 컨테이너 박스였다. 한때 야학 사무실로 사용됐던 곳으로 낡은 소파와 이불, 버려진 책상과 고장난 컴퓨터가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캄캄했다. 성봉은 아무렇지 않은 듯 “옷 몇 벌 껴입으면 겨울에도 여기서 잘 수 있어요. 그리고 공중화장실에서 씻으면 돼요”라고 했다.

박 대표는 누굴 위해 운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슬퍼서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 사회에 이런 인생이 있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오늘 죽어도 내일 죽어도 상관없던 아이가 음악을 통해 희망을 발견한 거였죠. 성봉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노래공부만 했어요. 악보조차 읽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음악을 통해 인생을 바꿔보려고 했어요.”

그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제껏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 없는 성봉이가 예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남들보다 수십 배 노력할 것을 조건으로 예고 진학을 도왔다. 성봉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통과하는 것이 1차 관문이었다. 강한 생존본능이 몸에 밴 성봉은 무슨 일을 하든 무섭게 파고들었다. 초·중등과정 검정고시를 차례대로 마치고 대전예술고등학교 성악과에 합격했다.

가장 행복했던 하루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또래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한껏 들떴다. 그러나 기쁨은 입학식 날 하루였다. 성봉은 학비 마련을 위해 매일 새벽 3시 옥천에 있는 물류센터에 나가 택배하역작업을 하고 등교했다. 부모의 후원 아래 편하게 다니고 레슨받는 아이들과 달리 고된 노동으로 시작되는 하루였다. 몸이 아파 학교에 빠지는 날도 다반사였다.

길거리 떠돌이 생활로 단련된 그였지만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 다른 환경의 친구들과 허물 수 없는 벽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친구들과 결코 동화될 수 없음을 느끼면서 학교에서 겉돌았다. “자퇴하고 싶다”고 수없이 말했다. 그러나 학교를 그만두면 기초생활수급권자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반지하 월세방이었지만 처음으로 생긴 집을 포기하기 싫었다. 더욱이 예전처럼 거리에서 껌을 팔고 싶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했다. 2007년 야간 일을 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건양대병원에서 입원치료 받을 때 병원에서 자선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운명처럼 찾아온 ‘코리아 갓 탤런트’

‘코리아 갓 탤런트’ 지역예선이 열리기 직전까지도 성봉은 방황했다. 2009년 고교를 졸업한 후 대구와 대전을 오가며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살았다. 박 대표도 그 사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지만, 마음속엔 자식과 같은 제자 성봉이 세상의 벽에 부딪쳐 멍들어 지내는 것이 안타까웠다. 성봉을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그는 자신이 기획한 ‘프레이즈 콘서트’에 성봉을 게스트로 세웠다. 콘서트가 2회쯤 진행됐을 때 코리아 갓 탤런트를 개최하는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고 주저 없이 성봉을 추천했다.

그러나 성봉은 자신의 불우한 어린시절 이야기가 알려지는 게 싫었다. “사랑을 전혀 못 받고 자란 아이가 어떻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일반인들과 경연을 벌이겠어요. 가뜩이나 소통이 안 되는데 더 욕먹지 않을까 두려웠어요. 박 선생님 외엔 아무에게도 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 했는데 이젠 전 세계에 퍼져버렸어요. 참네. 그래서 처음엔 너무 충격이었고 어디로 숨고 싶었어요.” 다음 날 그런 성봉이 걱정돼 박 대표가 찾아왔다. 함께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조금씩 안정과 위안을 찾았다.

성봉은 7월 16일 치러진 세미파이널 무대에서 ‘Cinema Paradiso’를 불러 또 한번의 감동을 연출했다. 당일 투표수의 56%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워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됐다. 8월 20일 시즌1의 최종 파이널에서 다시 한번 ‘넬라 판타지아’를 선택, 243표란 아슬아슬한 차이로 팝핀 종목의 ‘주민정’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2위, 아쉽지 않았을까. 그는 물론 아쉬움은 있지만 감사한다고 했다. “제가 1위를 했다면 어쩌면 한순간에 정점을 찍고 바로 내려왔을 것 같아요. 근데 2위잖아요. 한순간에 올라갔지만 서서히 내려 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2위는 더 나아갈 수 있는 순위고 이제 전 스물두 살밖에 안됐잖아요.”

프레이즈 콘서트

성봉이 5세 때부터 유흥가에서 들은 노래의 가사들은 하나도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복음성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네’ 등은 그가 노래하면서 은혜를 받는다. 아직 또래친구가 없어 외로운 그는 찬양하면 외롭고 슬프고 원망스럽던 마음이 정화된다고 했다.

“박 선생님을 만난 후 인천순복음 대전중앙교회에 출석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지휘하는 성가대에서 찬양하며 신앙을 키웠어요. 찬양을 통해 우리를 공평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나도 귀한 존재란 걸,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성봉은 얼마 전 청와대에서 토크 콘서트를 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콘서트와 팬미팅을 했지만 사실 일반 콘서트보다 찬양콘서트를 더 좋아한다.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것이 나의 바람이에요. 제가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제가 육체적으로 건강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감사해요. 몸이 건강할 때 찬양을 많이 하고 싶어요.”

박 대표가 시작한 프레이즈 콘서트는 자선공연이다. 수익금은 모두 세계의 어려운 나라와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대전 지역에서 처음 시작할 때 200∼300명이던 관객이 4회 때 성봉이 메인 게스트로 나오면서부터 3000명이 넘었어요. 콘서트는 앞으로 100회까지 국내외에서 계속될 겁니다. 현재 다른 교회들의 초청을 많이 받고 있어요.”

박 대표는 성봉이가 어린 시절 겪은 고통의 경험이 나중에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될 거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야 성봉과의 만남이 하나님의 섭리란 것을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성봉이에게 음악을 가르치게 하시고, 성봉이를 통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희망을 찾길 원하시는 것 같아요. 성봉이가 희망의 아이콘이 되길 바랍니다. 제가 할 일은 성봉이 좋은 음악인이 되도록 지켜봐주고 충고해주는 일이겠지요.”

최성봉씨에게 이제 돈이나 권력, 명예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사람들에게 종종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에 현재 내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거리의 아이로 살 때, 먼지처럼 사라져도 이름조차 기억해줄 사람이 없었는데, 이젠 수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고 사랑해주니 두려울 게 없어 보였다.

글 이지현 기자·사진 이병주 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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