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누리
 
꿈누리사이트맵
 
1
1
  
ID/PW 찾기

이전 글 다음 글 홈으로 돌아가기 리스트
[필독] 정신이상과 영적체험을 구분하라
cleven 4547 2006-12-22 22:13:20
 
 

정신이상과 영적체험 구분하라
  
보이는 신체와 보이지 않는 정신, 건강한 균형 필요
  
입력 : 2006년 12월 20일 (수) 17:04:07 / 최종편집 : 2006년 12월 21일 (목) 00:51:19 [조회수 : 911] 김충렬 (  newsnjoy )    

원인 모를 병리적 현상이 여러 종류의 정신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현대의 발전된 기계 문명으로 인한 비인간화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니 우리 사회에는 더욱 충격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원인들이 때로는 정신적 문제에서 연유되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실로 인간성의 상실과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질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보이는 신체 건강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 건강에도 관심을 기울여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살아야 할 요청을 받는다. 이를 위하여 필자는 정신 건강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점들과 그것에 따른 병리적 문제를 정신 기능과 관련하여 다루고자 한다.

지각(知覺, perception)은 정신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다. 지각은 사물이나 상태에 대하여 아는 것으로서 자극에 대응하는 감성적 경험이다. 이런 지각은 정신의 기능에서 판단·사고·감정·기억 등 중추 과정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도 현재의 감성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그것들과 다르다. 이런 지각은 감각 이전의 소여(所與)이지만 요소로서의 감각으로 분해되어 감각의 복합성을 구성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던 것이 지각은 요소적 과정으로는 분해하지 않는 완성된 경험의 단위이며 말초 기관의 자극으로 규정되지 않고, 중추 생리 과정의 감성 경험의 투영으로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지각은 개인의 특성에 따라서 그 범위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지각력이 높은 사람은 정신의 높은 단계의 인식이 가능한 반면에 지각력이 낮은 사람은 현실의 물체에 대해서도 분별이 어려울 정도다. 지각의 원시적 단계에서는 몸짓이나 표정의 지각처럼 모상(母像)적 성질이 있으며, 각종 감성 영역을 통해서 지각이 주어진다. 보통의 지각에서는 감성의 영역은 비교적 분화되고 또 현상적으로 자기와 외계로 나뉜다. 이러한 지각의 대상은 외부에 또는 자기 속에서 가능하다. 촉지각은 이 성질을 명확히 나타내고 있으며 청지각, 시지각으로 됨에 따라 외부에로의 자극이 강화되고, 반대로 시각·청각·촉각 등의 지각으로 연계됨에 따라 안으로의 자극이 강화된다. 이런 지각의 과정이 정신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현상이 문제이다.    

지각의 이상과 병리적 현상  

지각의 이상(異常)은 정신 기능의 문제를 보이는 것이다. 지각의 문제는 정신 기능의 병리적 현상 중 일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이나 심리의 영역에서는 지각이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경우에 심각한 정신 장애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때 외부의 자극이 없는 경우에도 영상·소리·통증 등의 지각이 가능하다. 이런 지각은 감각과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는데, 감각은 뇌의 단편적인 정보 처리에 의한 것이라면 지각은 감각을 기반으로 한 전체적인 정보 처리인 셈이다. 감각은 감각기관의 수용기로 받아들인 정보가 대뇌피질의 감각 투사 영역에서 이루어진 작용의 결과라면, 지각은 어느 물체에 의한 자극이나 감각에 의한 것으로써 자극하는 물체의 전체 혹은 그 특징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지각에는 시지각이 우선적으로 작용하지만 청각·미각·후각·촉각, 초감각적 지각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 특히 시지각에는 공간지각을 중심으로 하지만 상당히 종합적인 특성의 운동 지각도 이에 해당한다. 이는 지각이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각이 정상적으로 작용되지 않을 때 정신의 기능은 상당한 문제를 보이는 것이다.

지각의 기능이 정상적이지 못하면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이 불가능해진다.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은 정신병의 핵심적인 특성이다. 정신분열증의 경우 지각의 장애로 인하여 현실의 구분이 어려운 것이다. 그들에게 이런 지각의 문제는 순전히 착오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그들의 지각은 착오지각(錯誤知覺)을 바탕으로 한다. 착오지각이란 감각의 착오나 망각으로서 현실과 다르게 체험되는 현상이다. 또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착오지각은 관계되지 않는 사고만이 아니라 감각에 따라 체험되는 것이며, 관찰자에 의해서만 확인된다.

또한 착오지각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는데, 즉 존재하는 것에 대하여 다르게 지각되는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다른 것으로 지각되는 이른바 착오(錯誤, Illusion)다. 환자는 소리가 들리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악의 없이 수긍하지만 환각이 없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때 더 자세히 물어 보면 환자가 듣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소리가 아니고 실제로 모든 사람이 듣고 있는 주위의 소리다. 다만 환자는 그 소리를 자기에게 주는 목소리로 다르게 듣고 있다. 일반적인 소리가 어떤 사람의 목소리로 변하여 들리는 것이다. 이는 환자의 지각착오에서 치료자가 특히 신중을 기해야 할 경우다.

착오지각(錯誤知覺)은 망상의 특성이 있으나 엄격한 의미에서 환각(幻覺)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환각(幻覺, Hallucination)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관련된다. 환각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늘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신체에서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마치 누군가가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 같다면 그것은 환각이 아니다. 환각은 특성상 현실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보았거나 무엇에 관하여 들었어야만 한다. 이처럼 환각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지각하는 현상이다. 만약 어떤 여자가 실제와는 다르게 자신을 "화냥년"이라는 표현과 관계시킨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환각이 아니고 망상지각(妄想知覺) 내지는 망상적 해석(妄想的 解釋)이다. 그녀의 행동은 현실에서 그런 체험과 무관한 정신적인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때로 환각이 실제로 있었는가를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적 체험과 정신적 체험을 혼동하기 때문인데, 이는 마치 현실과 이상을 혼동하는 것과도 같은데, 상상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체험한 것으로 착각하는 이른바 감각착오인 것이다. 감각착오가 흔히 그 감각적 내용에서 서로 매우 다르고 정상적인 지각에 비교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환각을 특별한 영적 체험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환각을 현실적인 것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것으로 체험하는 현상이다. 기도 중에도 특별한 환상을 기대하거나 추구하려고 한다. 이는 현실적인 세상을 넘어 저 너머의 초월적인 것을 체험하려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인간은 이런 초월성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다만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계시의 종교라는 측면에서 더욱 추구하는지 모른다.

나의 환자 중에는 환상을 많이 본다는 교인이 있었다. 그녀는 30대 중반의 여인으로서 한 달 동안 교회에서 거의 금식기도하며 살았다. 그녀는 기도 때마다 많은 환상을 보았다고 했는데, 특별히 마귀와 많이 싸운 것을 진술했다. 심지어 마귀가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한 것을 말하면서 자신을 특별하게 훈련하게 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그녀는 스스로 상당한 영적 체험의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치료자인 나는 그에게 전혀 음식을 먹지 못한 상태에서는 신체적인 이상이 일어나는 것을 설명했다. 인체에는 칼로리가 부족한 경우에 뇌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용되지 못하여 생기는 현상임을 인식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은 마귀와 씨름한 영적 싸움으로 고집하였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인 현상을 대단한 영적 체험으로 받아들이려는 잘못된 종교적 신앙인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환각을 영적 체험으로 간주하려는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지각착오로 특정한 목소리 경청

어떤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는 환자가 있다. 그 목소리는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람이 아닌 어떤 귀신의 소리일 수도 있다. 정신분열증은 특정한 종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일차적이다. 이 경우에 환자는 그 목소리를 실제와는 다르게 자기에게 주는 목소리로 듣는다. 이런 목소리 경청에는 자신의 생각을 듣는 것, 대화 형태의 목소리, 환자의 행동에 주목하는 목소리 등이 해당한다.

이런 현상들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에서 쉽게 발견된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음성에 대해서 "나는 내 생각을 듣는다. 조용해지면 소리가 커진다"라고 대답한다. 어떤 정신분열증 환자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자 할 때 뇌 속에서 크게 들린다. 그것은 매우 많아서 마치 내 생각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다"고 말하고, 다른 환자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대화의 형태로 밤낮 들으며, 게다가 한 목소리는 늘 다른 목소리의 반대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어떤 정신분열증 환자는 그녀가 먹고자 할 때 "지금 그녀가 먹는다. 지금 또 다시 처먹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녀가 언젠가 개를 쓰다듬을 때 "그녀는 거기서 무엇을 하지? 그녀는 개한테 뭔가 칠하고 있군"이라는, 다른 때에는 "지금 그녀는 또 한번 창문을 여닫는군, 불을 켰어, 어쨌든 그건 공짜니까"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는 모두 현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누가 말을 한 것이 아닌데도 분명히 누가 말한 것처럼 들은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심리학에서 자기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무의식의 소리를 실제적인 음성으로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상적 진술에는 종종 착오적인 것이 오용되는 수도 있는데, 단일 감각착오는 그 중의 하나이다. 단일 감각착오는 매우 단순하고도 일회적이어서 현실과도 같은 체험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단일 감각착오는 더욱 확인이 어렵지만 분명히 감각착오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실제와는 다르게 이곳저곳에서 정확하게 어떤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너는 하늘만 바라보아야 한다. 너는 세계를 구제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는 경우다.

이런 목소리 경청과 관련하여 기독교인의 정신적 상태를 생각할 수 있다. 체험을 강조하는 신앙의 세계에서는 특정한 소리를 듣거나 환상을 보고자 하는 신비한 체험을 추구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추구할 경우에 이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신자가 지나치게 "신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면 때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소리가 진정한 "신의 소리"가 아닌 자기의 마음에서 만들어낸 소리일 수도 있다. 심층심리학에서 개인의 생각은 무의식에 저장되어 때로는 소리를 치고 나오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는 우리가 자신의 무의식의 소리를 "신의 음성"으로 착각할 수 있는 위험성이다. 이런 특성은 계시의 차원에서 쉽게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조심스러운 것은 기독교의 꿈을 해석하는 태도다. 기독교인은 꿈을 계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특성이 있다. 꿈은 반드시 계시가 아닌데도 말이다. 꿈은 자기의 무의식의 반영이다. 무의식은 칼 융(C.G. Jung)에 의하면 꿈으로 반영된다. 꿈은 수면 중에 무의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꿈을 계시로 받아들이려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기 때문에 계시를 받고자 하는 특성이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실로 계시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직접 통한다는 증거의 하나로써 인정되기에 이를 많이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정 기도 중에 꾼 꿈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시는 계시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물론 꿈이란 계시의 측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 다만 그 퍼센트가 너무나 낮으므로 정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두 딸을 가진 어느 목사님이 아들을 주시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그 목사님은 교인에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선포했다. 그래서 아들을 받는다는 기쁨으로 가득하여 미리 아들의 이름을 지어놓았는데, 출산하여 보니 딸이었다. 그래서 그의 계시는 엉터리가 되었고 나중에는 목회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갔다는 실화가 있다.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그의 잘못이란 어찌 보면 꿈을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한 것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알고 보면 도덕적인 잘못을 넘어 종교적 초월성에 심각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는 목사로서 무의식의 소리와 신의 계시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너무나 아들을 기대했던 그의 마음이 무의식에 저장되어서 그것이 꿈으로 나타났던 것인데 그것을 계시로 알았던 것이다. 목사가 그럴진대 평신도들이야 꿈을 제멋대로 해석할 것은 분명하다. 무의식의 소리를 틀림없는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려는 기독교인의 마음에 상당한 혼란이 발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각착오와 신체적 망상

환자는 면담 시에도 환각을 경험하는 수도 있다. 환자는 위쪽의 방구석을 향해서 귀를 기울이고 자기만이 듣는 목소리에 뚜렷이 대답한다. 이 경우 치료자는 그것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지각착오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착오와 관련에서 치료자는 환자의 태도나 반응을 고려하여 판단할 수 있다. 이때 되풀이되는 지각 착오에서는 구체적인 묘사만을 이용해야 한다. 어떤 소리가 들리느냐는 질문에 즉각 정보를 주는지, 눈에 띄게 당황해서 침묵하는지, 회피하는 대답을 찾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그들의 환상은 지금의 현실로 인식된다. 그들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생각을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환자는 호수를 가다가도 갑자기 고래 한 마리가 불쑥 솟았다고 말한다. 볼링을 하다가도 "선생님 지금 고래 한 마리가 불쑥 솟았습니다" 하고 말하기도 한다. 정상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이때의 착오는 모든 신체의 체험과 결부되는 것으로서 신체적 감각착오나 망각으로 추정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흔히 비교나 비유가 신체적 체험이라고 간주된다. 이러한 현상! 이 실제로 있다면 정신분열증에 또 다른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정신분열증의 소견은 신체적 체험에서 흔히 기계나 빛·암시·최면술의 탓으로 돌려지기 쉬운 이유다.

정신분열병 환자를 관찰해보면 특이한 체험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여기에 촬영당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면담 중에 환자는 갑자기 "선생님!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온 세상에 중계되고 있습니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촬영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문제는 촬영을 당하고 있는 기분이지만 그런 감정은 어떤 환각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 환자에게는 촬영기의 크랭크 소리나 영화 사진을 찍는 경우에 셔터 소리 등은 들리지 않는다. 또 시각적인 점에서도 촬영기는 보이지 않고 카메라맨도 숨겨져 있다. 이런 환자에게는 이차적으로 합리화하는 의미로 해석되는 망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아무도 볼 수 없는 이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자처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망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사례도 많다. 그런 환자는 대개 자신이 뉴스나 영화 속에 나온 것을 보았다는 주장을 하거나 그들을 대적하는 적이나 박해자가 몰래 카메라로 그렇게 촬영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촬영 주장은 직접적으로 체험된 것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 재구성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바로 "촬영 망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촬영 망상은 참된 "지식의 환각"이다. 환자는 촬영의 이유를 물으면 "그것은 확실합니다. 이유는 모르지만"하고 답변한다.

이와 유사하게 그들이 "녹음 당했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촬영 망상이 청각적인 형태를 취한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엿들었다"던가 "귀를 기울이고 엿봤다"고 주장하는 환자도 있다. 그 외에도 자기가 어떤 모양으로 "요구되고 있다"고 일정한 감정을 호소하거나 자기의 일을 "누가 생각하고 있다"는 등 거의 증명할 수 없는 것을 확신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신 건강의 한 측면을 다루었다. 정신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지각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룬 것이다. 정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문제는 실로 정신이 건강하냐의 문제다. 알다시피 정신 건강이란 신체 건강과는 달리 인지하기에 쉽지 않지만 그 결과는 훨씬 크게 나타난다. 그러기에 전술한 정신의 문제는 우리가 신체의 건강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신의 건강에 소홀한 결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종교의 초월성과 신비성은 그 어떤 경우에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단순한 건강으로 인한 정신적 이상을 영적 체험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물론 여기에서 다룬 지각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학문적 기초를 갖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분야를 정리하고 임상을 통하여 얻은 경험의 총체적인 것들임을 밝히고 싶다. 그러다보니 여기에 기술한 것들은 필자의 단순한 견해이고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넋두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이런 점들을 감안하여 이해하므로 신앙적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김충렬 / 한국상담치료연구소 소장

 
- 54 -수정 삭제 답변


 

Copyright ⓒ dreamel, All rights reserved   Since 2003.09.15